윤 서 영
Seoyoung Yoon

artseoyoung@gmail.com

◈ UX/IoT Design Lab: How to utilize technology into art

◈ 사진 프로젝트: 잘 사용되지 않는 섬세한 감성

◈ 메이킹 비디오 프로젝트: 예쁜 쓰레기 만들기 by Monouse the Trashmaker

◈ 즉흥적 설치 작업 시리즈: Impromptu Sculptures

◈ 짤막한 전시감상: 내볼일 많수다

I don't want that 싫어. 2018.



▲계속 올리는 그림들이 과거를 파먹고 있는 것 같아서 드로잉 타블렛을 새로 산 기념으로 이런 쓰레픽디자인을 해보았다.


Red 빨간. 2016.




Restricted Area 접근금지. 2016.




Pipe Connected 연결된 파이프. 2016.




In the Toilet 변기에. 2016.




Self Portrait 자화상. 2013.




Upside-down Chair 뒤집어진 의자. 2014.




Black Berry 블랙베리. 2013.



▲ 스마트폰이 새로 나와 온갖 관심과 이슈를 만들어낼때 나는 버튼이 눌리지 않는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다며 블랙베리를 고집했다. 손가락 끝의 살점이 버튼이 되어 판판한 곳을 눌러도 괜찮다는 걸 알기까지 다른 사람에 비해 시간이 좀 걸린편이다. 새로운 것을 빠르게 흡수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오래된 관습에 천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Hand Contour 손 드로잉. 2013.




Ditch 버려. 2013.




Tranquillo 잔잔한. 2018.




Liquitex 리퀴텍스. 2018.




Spotlight Here 여기에 스포트라이트. 2016.



▲ 왜 우리는 종이 한장에서도 시선을 차별적으로 둘까. 여백은 언제나 비어 있어야 할까. 여길봐. 스포트라이트는 여기라구.



Margin Study 여백 연구. 2016.





The Shelter 피난처. 2015.





The Sixth Sense 육감. 2018.




Hello, Stranger 안녕, 낯선사람. 2018.





French Kiss 프렌치 키스. 2018.





Demian 데미안. 2018.







작업노트 2: 타원(Ellipse)



This work is the result of the thought process of the origin of art.
이 작업은 미술의 기원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Once my art history professor told the class,
한번은 제 미술사 교수님께서 수업에서 말씀하시길,
"the origin of art is not the painting on the cave wall, but it is the hand-print on the cave wall."
"미술의 기원은 동굴벽화가 아니라, 동굴벽에 난 손자국이다."라고 하신적이 있습니다.
It is because it proves and informs ‘I am now here' to other people and descendants.
그 이유는 그 손자국은 '나는 지금 여기 있다'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과 후손들에게 그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기 때문이지요.
I think the hand-print came down to the Jackson Pollock's mark making in the modern time.
제가 생각했을때는 그 손자국이 현대의 잭슨 폴록의 마크 메이킹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What is mark making?
무엇이 마크 메이킹일까요?
I think as the hand-print proves the existence, many artists' marks prove something, the desire to live in the history.
저는 그 손자국이 존재를 증명했다면, 많은 예술가들의 마크, 흔적들은 역사 속에서 살아 남고자 하는 욕망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So, I made a mark making machine.
그래서, 저는 흔적을 남기는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The hand-print and Jackson Pollock's paint spills are individual; however, my machine is collective.
그 손자국과 잭슨 폴록의 물감 떨어진 자국들은 개인적이죠. 하지만, 제 기계는 집단적입니다.
It can make many people share their existence and their instinctive desire by spinning the machine and making a mark.
이 기계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와 본능적인 욕망을 공유하게 합니다.
When people spin the machine, the line of the ellipse gets thicker and darker
사람들이 기계를 돌리면, 타원의 선은 더 진해지고 굵어집니다.
because people's desire to live in the history is conveyed and stays on the wall.
왜냐하면 사람들의 역사속에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이 벽에 남기 때문이지요.


작업노트 1: 회화의 식민주의(Colonialism of painting)



저는 미국의 대학교에서 순수미술과 심리학을 복수전공하여 학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술 수업을 듣던 중 저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 '회화(Painting)' 수업에서 교수가 유화만 쓸것을 강요하는가? 왜 다른 회화의 재료들을 소개하지 않고 유화만이 회화의 전부인양 가르치는걸까? 동양화는? 아니면 다른 문화권의 회화는? 이 문제에 대하여 교수와 언쟁을 해보기도 하지만, 나이많은 백인 남자 교수는 확고한 태도로 언쟁에 임했고 저의 문제 제기와 그에 따른 문제의 시정에 대한 부분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화가 났고, 제 키보다도 높고 넓은 크기의 캔버스에 곱게 유화로 그린 그림을 찢어버렸습니다. 친구가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는데 찢어버려서 아깝다고 했지만, 저는 거기서 어떻게 저의 감정과 생각을 찢어버린 캔버스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서구 회화 논리에 다른 다양한 회화들이 식민지화된 양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찢어버린 캔버스 뒤에 식민지화 된 저의 정체성을 그려넣어 보았습니다. 한지나 장지와 같은 동양화를 그릴때 사용되는 매체는 너무나 비싸서 그만한 크기의 것을 살 엄두가 안났습니다. 그래서 남은 캔버스를 그대로 쓰지만, 뒤쪽의 캔버스에는 캔버스틀도 넣지 않고 수성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는 한국 국기가 제격이라고 생각되었고, 현대화된 태극기 대신에 태극기의 초기 버젼인 삼태극을 그려넣었습니다. 저는 애국주의자는 결단코 아닙니다. 저는 미국에 있을때 한국이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것을 비웃었고, 나는 한국에 절대 돌아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뱃속에 있을때부터 흡수했던 문화나 관습이 무시되고,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화가 났습니다. 이 이전에도 '철학(Philosophy)' 수업에 들어갔는데, 서양철학만 커리큘럼에 있길래 왜 '철학' 수업이라면서 모든 여러 나라의 철학이 아닌 서구의 철학만이냐고 문제 제기를 해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부질 없는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회화는 오로지 유화뿐이고, 철학은 오로지 서구에서 통용되는 철학뿐인거죠. 어차피 유화나 서양철학이 주류인데 굳이 그걸 구분해서 서양화나 서양철학으로 부를 필요가 없는겁니다. 이런 소소로운 것이 예민한 저에게는 난폭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의문 제기가 타당했는지, 아니면 '뭘 그런걸 가지고'인지에 대해서도요.



2017
2016

20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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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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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1


저에게 추상이란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의 것을 깨부수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형태가 모호한 하늘의 구름에서 조차 사람 얼굴이나 새와 같은 일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형상들을 발견합니다.
익숙한 것을 찾아 보는셈이지요.
그러한 익숙함과 일상적인 것을 낯설게 만들기 위해 무작위적인 점, 선, 면으로 모호한 어떤것을 빚는데 주력합니다.




  The Room - Sculpture + performance + video (Running time 2:40)

  There is a room which invites you to come in.
  당신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방이 하나 있습니다.
  The room is telling you, you are special.
  그 방은 당신이 특별하다고 말합니다.
  When you go inside and close the door to separate you from the world,
  you will see a different statement that we all face time to time.
  당신이 그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며 세계와 분리될때,
  당신은 또 다른, 당신이 때때로 마주치는 문구를 보게 됩니다.
  The sentence is just repeatedly shown, and you repeatedly hear from your inner voice.
  이 문장은 반복적으로 보여지고, 그럼으로써, 당신의 내면의 목소리로 부터 반복적으로 듣게 됩니다.
  The light penetrates not only through the cardboard, but also to your heart.
  빛은 골판지만 뚫고 지나가는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도 꽂힙니다.
  The negative statement is too powerful and deeply rooted, so to get rid of this negative thought, I decided to use a little bit violent way.
  이 부정적인 문구는 너무나 강력하고 깊숙히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기 위해 저는 조금 폭력적인 방법을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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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iem for Namjune Paik 백남준을 위한 진혼곡 Video (Running time 3:43)


Waiting to Die - Zero 7
죽기를 기다림 - 제로 7


It's just a day like any other day
오늘은 그저 다른 날과 같은 하루일뿐이죠.
A beautiful day for an accident, let's say
말하자면,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한 한 아름다운 날이죠.
Yes it's just a day, like any other day
그래요, 오늘은 그저 다른 날과 같은 하루일뿐이에요.
Just one step closer to the end of the buffet
단지 뷔페의 마지막에 한 발자국 가까워졌어요.
La la la la la la
라 라 라 라 라 라
La la la la, 'cause we're waiting to die
라 라 라 라,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Now it's a good time for a tasty glass of wine
지금은 맛좋은 와인 한잔을 먹기 좋은 시간이죠.
Let's not burden our minds with carbon dioxide
우리의 마음이 이산화탄소로 무거워지지 않게 해요.
And everyone hurry, don't sit and abide
그리고 모두들 서둘러요. 가만히 앉아서 머물지 말아요.
Yes, everyone stand up, we're running out of time
그래요, 모두 일어나요. 우리는 시간이 없어요.
La la la la la la
라 라 라 라 라 라
La la la la, 'cause we're waiting here to die
라 라 라 라,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Look what a terrible mess that we've made
우리가 만든 끔찍한 엉망을 좀 봐요.
The sun beats us down as we search for the shade
우리는 그늘을 찾는데 햇살은 우리를 두들겨패죠
And, yes, it is true, death is everyone's fate
그리고 맞아요. 이건 진실이에요. 죽음은 모두의 숙명이죠.
But we've made it this far, it's time to celebrate
그러나 우리는 이 멀리까지 왔죠. 이제 우리는 축하할 시간이에요.
La la la la la
라 라 라 라 라
La la la la, 'cause we're waiting here to die
라 라 라 라,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La la la la la
라 라 라 라 라
La la la la, 'cause we're waiting here to die
라 라 라 라,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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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em I wrote for this work - Korean Ver. and English Ver.

작업노트 3: 나의 생일 케잌

생일은 나의 탄생을 축하받는 기쁜 날이지만,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느끼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과 중압감에 대한 생각을 작업으로 구체화 시켰다. 목재와 철재, 솜과 왁스 등으로 거꾸로 뒤집어진 모양의 케잌 의자를 만들고 나는 그 의자에 앉는 퍼포먼스를 당시의 같은 반 친구들과 교수님께 보여줬다. 거꾸로 뒤집어진 의자는 내가 종종 생각하는 주제이다. 나는 의자라고 하면 왕좌가 생각나고, 그것을 뒤집음으로써 어떤 체제나 시스템의 전복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죄없는 케잌을 뒤집고 심지어 거기에 올라 앉아 버리지만 그것이 내가 갖는 '나이 듦'에 대한 감정의 표현이고, 곧 저항이다. 퍼포먼스 기획 자체는 뒤집어진 케잌 의자에 앉아서 시를 낭독하는 것이었지만, 케잌 겉면에 바른 왁스때문에 앉으려다 미끄러졌다. 우연에 의한 결과였지만, 이 또한 어떠한 의미가 더 강조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이 듦에 대한 감정 - 예컨대 싱싱한 꽃이 시들어 쪼그라드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한 좌절감 - 과 내가 느끼는 '나이값은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이 아주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이 듦과 인격적 성숙이 함께가야한다는 강박적인 사회적 기대가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퍼포먼스에서 나는 한복을 입었는데, 나는 미국에 꽤 오래 체류했음에도 저 퍼포먼스때 포함해서 한복을 두어번 정도밖에 입지 않았다. 할로윈 같은때는 절대 입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한복이 표방하는 한국 문화는 할로윈과는 맞지 않다고 느꼈다. 미국에 있을때는 잘 몰랐는데, 내 작업들을 쭉 살펴보면 한국에 대한 작업들이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미국이라는 한국보다는 선진하다고 하는 곳에 있으면서 내가 20여년간 몸담으며 흡수했던 문화와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험들이 많았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작업의 의도를 구체화 시키려고 시를 적었다. 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에 저항하면서도 그래도 동시에 고마운 양가감정에 대해 적었다. 마치 때론 나의 탄생과 삶을 끔찍히 저주하면서도 때론 삶에 감사하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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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an Dance 샤먼 댄스

I always think about the origin of art.
나는 항상 예술의 기원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This time I attempted to become a shaman to find the connection between art and shamanism.
이번에 나는 샤머니즘과 예술의 관계를 찾기 위해서 샤먼(무당)이 되어보았다.
In the prehistoric period, art was for shamans.
선사시대에는 예술은 샤먼들의 것이었다.
Sometimes they used art as rituals and other times as a tool to reach god.
샤먼들은 때론 예술을 의식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다른때에는 신에게 도달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Some Koreans still believe in shamans and there are practicing shamans existing in Korean society.
몇몇의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무당을 믿고, 실제로 한국 사회에는 의식을 행하는 샤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As a Korean, I cannot deny that I also have belief in superstition and shamanism.
한국인으로서, 나도 사실 미신과 샤머니즘을 믿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Representing a cultural aspect, I have one question.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면, 나는 한가지 질문이 있다.
Do you think my work is just exotic and different?
당신이 생각하기에 내 퍼포먼스는 이국적이고 달라보이는가?
I feel guilty about believing in shamanism because this belief might not be accepted in modern society.
나는 솔직히 샤머니즘을 믿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믿음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My guilt comes from a disturbing but widespread world view, the beliefs one culture is superior than another.
내 죄책감은 불편하지만 만연한 세계관에서 오는데,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다.
Though, as an artist, I want to take a role like shamans.
그래도 나는 예술가로서 샤먼의 역할을 맡고 싶다.
I hope that audience who are highly elegant and sophisticated can connect with the primitive side of world by me.
나는 매우 품위있고, 기품있고, 우아하신 관객들이 나를 통해서 세계의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부분과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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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tation to my childhood 저의 어린시절로 초대합니다 (Running time 3:04)

When I was young, my mom tried hard to make me a genius.
제가 어렸을때, 엄마는 나를 천재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3 years old girl had to study and study and study.
네살배기 여자아이는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했죠.
One day, my mom told me to fill the blanks on the table.
어느날, 엄마는 나에게 표의 빈칸을 채우라고 하셨어요.
The table was full of numbers.
그 표는 숫자로 가득했어요.
I knew the numbers were getting larger as it goes.
저는 그 숫자들이 점점 갈수록 커진 다는 사실은 알았죠.
And the last number on the table was 100.
그리고 그 표의 마지막 숫자는 100이었어요.
31 and 32 then 33.
31, 32, 33.
I was slowly getting there.
저는 조금씩 칸을 다 채워나갔죠.
It was probably 49 or 51 or 68.
아마 49나 51, 혹은 68이었을 거에요.
I got stuck.
전 막혔어요.
I got stuck on one single blank.
표의 한칸에서 완전히 막혀버렸어요.
I was sweating.
땀이 줄줄 났죠.
My hands were all sweaty and pencil in my hand was even slippery.
제 손바닥은 땀이 흥건했고, 덕분에 손에 쥔 연필이 미끄러울 정도 였어요.
“What are you doing? What is the next number?”
“지금 뭐하고 있니? 다음 숫자가 뭐야?”
It was her, my mom yelled at me.
그건 엄마였죠. 엄마는 저에게 소리쳤어요.
‘I don’t know.’ I couldn’t say that.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I couldn’t even mumble.
모른다고 중얼거리지 조차 못했어요.
I was staring at the innocent white blank.
저는 그저 그 죄없는 흰 빈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요.
It was very sudden.
그때였어요.

I could feel something hit my back of chair, very strongly.
제 등 뒤쪽 의자를 무언가로 세게 내려치는 걸 느꼈어요.
It was a wooden stick my mom held.
그건 엄마가 들고 있던 나무 막대였어요.
I looked at her and she was all upset.
저는 엄말 쳐다봤고, 엄마는 엄청 화가 나 있었어요.
The stick, the thick stick was broken in half.
그 두꺼운 막대는 두동강이 나있었죠.
I shivered in fear.
저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어요.
What if it was me other than the chair?
만약 그게 의자가 아닌 저였다면 어땠을까요?
I couldn’t be calm, but I couldn’t cry either.
저는 결코 침착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울 수도 없었죠.
Because of the extreme tension, some parts of my body were numb.
극도의 긴장감때문에 제 몸의 일부분이 마비된것 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What is the next number?”
“다음 숫자가 뭐냐니까?”
I still remember all the tension I had.
저는 아직도 그때 제가 느꼈던 긴장을 기억해요.
Was it abuse?
그게 학대였을까요?
Maybe.
아마도요.
Was it her way of love?
그게 엄마의 사랑의 방식이었을까요?
Maybe.
아마도요.
Now I can say without fear.
저는 이제야 비로소 두려움없이 말할 수 있어요.
I don’t know.
잘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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